콘디
12월 4일 · 자유
달리기를 시작한 건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 잡생각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말하는 것』을 읽게 되었다. 책 전체를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펼쳐 읽은 구절들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정확히 건드렸다. “아, 나도 이런 느낌으로 달리고 있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많았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 경쟁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매일 조금씩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과정. 나는 이 문장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사실 달리기는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멀리 뛰는지, 그런 건 나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딱 하나 —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나아졌다고 느끼고 싶어서다. 달릴 때면 머릿속이 정리된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조금씩 사라지고, 대신 단순하고 명료한 감정만 남는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그게 좋다. 또 하루키는 나이가 들면서 기록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전의 나와 경쟁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읽고 꽤 오래 생각이 머물렀다. 나 역시 예전의 나와, 혹은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달릴 때만큼은 조금 다르다. 지금의 몸, 오늘의 컨디션, 오늘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속도. 그 흐름 안에서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달리기는 나에게 작은 성취감을 준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움직였다”는 그 감정.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훨씬 가벼워진다. 앞으로도 거창하게 빠르게 달릴 생각은 없다. 그저 하루키가 말했듯이, “조금씩, 꾸준히, 내 속도대로” 달릴 것이다. 혹시 미래의 내가 지금보다 못 달리게 되더라도 괜찮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달리면 된다. 달리기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훈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작은 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것이다. 오늘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조금 더 당당하기 위해서.